불과 10년 전만 해도 마다가스카르에서 장티푸스는 공중보건 문제가 아니었다. 장티푸스는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다른 열성 또는 위장 질환에서도 흔히 나타나며 확진을 위해서는 혈액 검체를 배양한 진단검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세균 감염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장티푸스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이는 마다가스카르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많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제였다. 특히 장티푸스는 인구 밀도가 높은 남아시아 지역의 도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그 외의 지역과 환경에서는 데이터 부족이나 사람들의 인식 결여 등의 문제로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러한 지식 격차 문제를 인식하여, 아프리카 지역에 더 많은 역학 정보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2010년 케냐 킬리피에서 국제 회의가 개최되었고, 이후 국제백신연구소(IVI)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국가에서 추가 조사나 백신접종 등의 예방 조치가 필요할 만큼 장티푸스의 질병 부담이 큰지를 평가하고 그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아프리카 장티푸스 감시(Typhoid Fever Surveillance in Africa, TSAP)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첫 번째 사업이다.
이 감시 연구는 부르키나파소(2곳), 기니비사우, 에티오피아, 가나, 케냐, 마다가스카르(2곳),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탄자니아(2곳) 등의 13개 지역을 선발하여 장티푸스 발생률 또는 신규 환자 발생률을 추정한다. IVI의 백신 임상개발/보급 및 역학(EPIC) 담당 사무차장 플로리안 막스(Florian Marks) 박사에 따르면, 선정된 지역들은 인구 기반의 감시 체계가 확립되어 있는지, 혈액 배양 능력을 갖춘 실험실이 존재하는지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막스 박사는 TSAP 출범 이후 아프리카에서 IVI의 장티푸스 감시 활동을 이끌고 있다.
SETA 및 TyMA에 참여하고 있는 장티푸스 감시 지역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의 이메린시아토시카 보건소 II(Imerintsiatosika Centre de Santé de Base II, CBSII).
자료 제공: IVI
다른 참여 국가 연구 기관들의 경우, 보건 및 인구통계 감시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마다가스카르는 실험실 및 진단 설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막스 박사는 “마다가스카르는 안타나나리보 대학교에서 10년 이상 전염병 및 백신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라파엘 라코토잔드린드레이니(Raphaël Rakotozandrindrainy) 교수가 있다”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그렇게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하는 분은 거의 뵌 적이 없을 정도”라고 칭찬했다. 막스 박사와 라파엘 교수는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위치한 30여곳의 보건소를 함께 방문하였다. 막스 박사는 “질병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적절한 진단 방법이 없어 역학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며, “마다가스카르는 진단 역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IVI 의 사무차장 플로리안 막스 박사(중앙 좌측)와 TyMA 사업 연구기관의 책임연구자 라파엘 라코토잔드린드레이니 교수(중앙 우측)가 마다가스카르 이메린시아토시카의 백신접종 현장 방문하고 있다. 자료 제공: IVI
TSAP 1년차에는 새로운 성과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인프라 구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처음에는 두 곳의 병원에서 겨우 한 두 건의 장티푸스를 검출하는 데 그쳤다. 막스 박사는 “엉뚱한 곳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한다. 새로운 지역을 선정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했다. 병원에 장티푸스를 제대로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의사와 의약품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팽배하였기 때문에 환자들은 보건소를 적극적으로 방문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주민들의 인식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막스 박사는 “환자에게 장티푸스 증상이 나타날 경우, 우리가 치료비를 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보건소에 더 많은 의료진을 채용한 결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게 되었고 감시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보건소에 의사가 많아져 더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게 되고, 환자가 늘어나니 장티푸스 발견 건수도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현재 축적된 자료들은 보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시한다. TSAP와 그 후에 실시된 아프리카 중증 장티푸스 실태조사(SETA)와 SETA Plus에 의해 수집된 역학 증거에 근거했을 때, 현재 마다가스카르는 장티푸스 발생률이 매년 10만 명당 100건을 상회하는 “고 질병부담” 국가로 분류된다.
아프리카 장티푸스 감시 프로그램 대상 지역의 침습성 살모넬라 감염 현황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침습성 살모넬라 질병 발생률: 다기관 인구기반 감시연구. 란셋 글로벌 헬스(Lancet Global Health). 2017; 5(3): E310-E323.
TSAP를 통해 수집된 자료는 2018년 세계보건기구가 장티푸스 풍토병 국가에서, 특히 영아와 기타 고위험 집단에서의 장티푸스 발병을 통제하고 질병 부담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장티푸스 접합백신(TCV)을 사용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발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권고는 각국의 규제기관이 자국의 정규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TCV를 도입하기 위한 사례를 구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IVI의 EPIC 부서 현실사용증거팀장인 버크네 틸라훈 타데세 (Birkneh Tilahun Tadesse)는 박사는 설명한다. 그는 “장티푸스의 경우, IVI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질병 부담을 확인할 수 있는 양질의 역학 자료를 생산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더 나아가 가나와 콩고민주공화국 등과 같은 국가에서 장티푸스의 질병 부담을 낮추는 데 있어 TCV 백신접종이 실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한다.
IVI는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의사결정을 통해 TCV를 도입할 수 있도록 안타나나리보 대학교 마다가스카르 백신연구소(Madagascar Institute for Vaccine Research, MIVR)의 라파엘 교수 연구진과 또 한번 협력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TCV가 높은 질병부담 환경에서 지역사회 보호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집중되었다.
2021년 운영을 시작한 MIVR은 가나와 에티오피아에 설립된 IVI 협력센터와 더불어 아프리카 지역에 설립된 세 곳의 IVI 협력센터 중 하나다. 자료 제공: IVI
“마다가스카르의 장티푸스 접합백신 도입(TyMA) 사업은 백신접종 사업을 통한 TCV의 실제사용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2020년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마다가스카르의 아리보니마모와 안타나나리보-아시몬드라노에서 WHO의 사전적격성 평가인증을 받은 Vi-CRM197(상표명: TYPHIBEV®, 제조사: 바이올로지컬 E Limited) 백신을 사용하여 9개월에서 16세 연령의 모든 영유아와 소아들에게 접종을 완료하는 것입니다.”
IVI와 MIVR가 2023년 8월 21일 개최한 TyMA 백신접종 캠페인의 착수식. 자료 제공: IVI
IVI의 연구원이자 TyMA 사업의 기술책임자인 나타샤 리켓 (Natasha Rickett) 박사는 아프리카 인구, 특히 2세 미만 영아에서 백신의 장기적인 안전성 및 면역원성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에 장티푸스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며 “그 이후 TCV가 전국에 조속히 공급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백신접종이 지역사회와 의료시설의 항생제 사용 및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을 통한 질병 예방이 항생제의 사용과 남용을 낮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리켓 박사는 설명했다. 약제에 내성을 지닌 장티푸스 사례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백신은 약제 내성 장티푸스 균의 확산을 막고 항생제에 대한 전반적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백신접종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IVI는 MIVT 연구원 및 임상의와 함께 “현장 지도자 양성”교육을 진행하였다. 현장 지도자들은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과, 현장에서 근무하는 TyMA 사업 간호사들을 교육했다. 리켓 박사는 “10개월 동안 모든 연구 참여기관에 백신 냉장고, 면봉 등의 필요 물품을 완벽하게 지원하였고, 이러한 환경에서 의료 종사자들이 연구 계획서에 명시된 모든 측면에 대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진행했다”고 말했다.
TyMA사업을 통한 장티푸스 접합백신의 접종을 돕는 라파엘 교수와 지역사회 봉사자들
자료 제공: IVI
이러한 모든 노력은 2023년 8월 21일 결실을 맺어 IVI와 MIVR이 TyMA 백신접종 사업을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개회식에서 라파엘 교수는 12년 동안의 연구 협력과 역량 구축 덕분에 이번 캠페인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라파엘 교수는 “우리는 아리보니마모와 안타나나리보-아시몬드라노에 거주하는 6만 명에 달하는 소아를 보호하는 일뿐만 아니라, 마다가스카르에서 TCV 사용의 공식 승인을 위한 증거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장티푸스로부터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식에는 주 마다가스카르 대한민국 대사도 개회식에 참여하여 한국과 마다가스카르 간 장기적인 협력 활동에 지지를 표명하였고, 포항공과대학교 성영철교수도 참석하였다. 성영철 교수는 2019년 IVI의 한국후원회를 통해 개인 기부금을 전달해 TyMA 사업 전체 및 IVI가 주도하는 장티푸스 백신접종 캠페인 비용을 지원했다.
성 교수는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면서 “이번 캠페인의 성공을 위해 각별히 애써 주신 막스 박사님, 라파엘 교수님 및 팀원들에 축하의 말을 전하며, 감염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여 전세계 어린이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난 30년 동안 나의 꿈이었다”고 밝혔다.
캠페인 첫 날 57명의 어린이가 이메린시아토시카 CSBII에서 백신접종을 받았다. 라파엘 교수는 백신접종을 위해 자녀를 데려온 거의 모든 부모와 조부모와 악수를 했다. 간호사가 백신접종 전 체온을 측정하기 위해 긴장한 아기의 팔 아래에 체온계를 밀어 넣을 순간 간간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를 빼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즐겁고 따듯했다.
라파엘 교수는 “오늘 찾아오신 접종자 수가 많아 매우 기쁘다”며 “백신접종 보건소에 찾아오는 사람이 적을까 모두 걱정했지만 다행이고, 내일은 디지털 체온계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SBII 현장 6곳에서 실시되는 보건 시설 기반의 감시 외에, TyMA 연구자들은 추정된 백신 효과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 참여자들의 가정 방문을 통한 추적관찰을 적극 진행할 것이다. 새로운 중요 자료가 확보되면, TyMA는 는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최근 구성한 국가예방접종기술자문단과 긴밀히 협력하여 TCV의 도입을 앞당기는 한편 TCV의 전국적 배포를 위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글: 임애리